
안데스 산악전이 부른 선택… 페루는 왜 K-2 전차를 골랐나
국산 K-2 전차가 중남미 시장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 현실로 다가왔다. 현대로템은 9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에서 페루 육군 및 국영 방산기업 FAME과 K-2 전차 54대, K-808 차륜형장갑차 141대 공급을 핵심으로 하는 총괄합의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1월 체결된 지상 장비 협력 협약의 본격적인 후속 단계로, 내년 상반기 가격 협상과 세부 조율을 거쳐 최종 이행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다. 합의 내용이 그대로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 경우 한국 전차가 유럽에 이어 중남미 시장에 최초 진출하는 사례가 되며, 역대급 규모의 지상 전력 현대화 패키지 수출이 완성된다.

중남미의 복잡한 전력 환경 속, 페루가 K-2로 기운 이유
중남미는 오랫동안 유럽과 러시아제 무기가 주력 시장을 형성해 왔다. 페루 역시 냉전기 도입한 T-55 전차 280여 대를 지금까지 주력으로 운용해 왔지만, 수명 종료가 임박하며 대대적인 전력 갱신 필요성이 제기됐다. 페루 육군은 지난 10여 년 동안 육군 현대화 전략을 여러 차례 추진했지만 국경 감시·내부治安 작전·마약 카르텔 대응 장비에 예산이 우선 배정되면서 전차 도입은 뒤로 밀렸다.
그러나 안보 상황 변화와 노후 전력 한계가 본격화되면서 페루군은 전차 사업을 재개했고, 이탈리아의 센타우로-II, 터키 알타이, 독일 레오파르트2 등이 후보군에 올랐다. 그럼에도 최종 선택은 K-2였다. 전문가들은 단순 화력·가격 경쟁이 아니라 “페루의 전장 환경에 가장 적합한 전차가 K-2였다”는 점을 핵심 배경으로 분석한다.

해발 4000m 안데스 환경, 중량·냉각·기동성에서 K-2가 보여준 압도적 우위
페루의 지형은 전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축에 속한다. 안데스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산악 도로는 폭이 좁고 급경사·급커브가 반복되며, 상당수 교량은 40~50t 이상 하중을 충분히 견디기 어렵다. 여기에 고도 3000~4000m에서는 엔진 출력 저하, 냉각 효율 감소, 연료 소모 급증, 브레이크 과열, 현가장치 피로도가 동시에 발생한다. 전차의 기본 성능보다 ‘고지대 생존능력’이 수명을 좌우하는 환경이다.
K-2는 개발 초기부터 한반도 산악전 수행을 전제로 설계된 전차로, 반능동 유기압식(ISU) 서스펜션은 급경사 오르내리기와 험지 통과 능력을 극대화한다. 해발 고도에서 출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1500마력 엔진도 페루 평가단이 높게 본 요소다. 상대적으로 중량이 무거운 레오파르트2나 알타이는 산악 지형에서 교량 통과와 고지대 엔진 효율에서 불리함을 보였다는 평가가 현지 외신에서도 제기됐다. 페루군은 “K-2는 산악·사막·평지 3개 환경에서 모두 균형 잡힌 성능을 보였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평양 연안 사막지대에서는 새로운 사격 통제 능력이 핵심 강점
페루는 안데스 산맥 너머로 태평양 연안을 따라 사막지대가 길게 형성돼 있다. 시야가 열려 있는 이 지역에서 K-2의 장점은 화력·정밀 사격 능력이다. K-2의 사격통제체계, 자동 표적 추적 기능, 고정밀 사거리 연장탄 운용 능력은 T-55 전차와는 비교 불가능한 세대 차이를 보여준다.
지형적 요인이 “기동성은 산악, 화력은 연안 지역”이라는 이중 조건을 만들어 왔는데, 양쪽 모두를 충족하는 전차는 실제 후보 중 K-2가 유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페루군은 K-2를 단순 교체형 전차가 아니라 “전력구조 자체를 바꾸는 플랫폼”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현지 생산·군수지원·교육훈련 패키지… 페루가 본 K-방산 신뢰도
페루가 K-2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이미 누적된 ‘K-방산 경험’도 자리한다. 페루는 KT-1 훈련기 20대를 도입해 장기간 활용해 왔고, 지난해에는 K-808 차륜형장갑차 30대를 구매한 데 이어 올해 110대를 추가 주문했다. 기아의 전술차량(KLTV) 도입도 성사되며 한국 장비에 대한 신뢰가 축적됐다.
특히 K-808의 개량 과정에서 페루군 요구에 맞춘 하부 방호 강화, 중량 조정, 도하 장비 변경 등 ‘현지 맞춤형 설계’를 적극 반영한 점이 높게 평가됐다. 페루는 “한국은 요구사항을 반영해 파생형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유일한 파트너”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K-2 역시 페루의 산악·사막 환경에 특화한 파생형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으며, 현대로템은 교육훈련·정비 인프라 구축·후속 군수 패키지를 포함한 장기 지원 계획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 판매를 넘어 페루군의 장비 운영 자립도를 높이는 전략으로, 중국산·러시아산 장비에 흔히 발생하는 ‘부품 의존 문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중남미 방산 시장에 열린 새로운 문… K-2 수출이 남기는 의미
페루의 K-2 선정은 단순 전차 수입이 아니라 중남미 군 현대화 시장의 흐름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남미는 경제·정치적 이유로 저가형 무기 수요가 많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품질·정비 체계·산업 협력까지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한국은 유럽·중동에서 검증된 K-방산의 운영 효율성과 빠른 납기, 현지화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게 됐다.
페루군은 K-2와 K-808을 통해 육군 기계화 부대의 구조 자체를 재편할 계획이며, 장기적으로는 페루 국영 방산기업 FAME과 협력해 현지 생산 라인을 구축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번 합의가 최종 계약으로 이어질 경우 K-2는 중남미 전장 환경에서 최초로 운용되는 한국 전차가 되며, 후속 국가로 콜롬비아·칠레·브라질 등이 후보군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산악과 사막, 연안이 공존하는 까다로운 지형이 K-2의 선택을 이끌었고, 이는 한국 전차 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가진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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