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니셔티브 출범과 현실의 간극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E·N·D(Exchange·Normalization·Denuclearization)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교류와 관계 정상화, 그리고 비핵화를 통해 냉전적 갈등을 종식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출범 직후부터 냉엄한 현실과의 괴리가 드러났다. 북한의 핵능력 증대 속도는 남북 간 신뢰 구축이나 대화의 장을 여는 것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핵물질 보유량이 던지는 의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최근 언론 간담회에서 북한이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이 약 2,000kg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핵무기 100기 이상을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이다. 여기에 플루토늄 보유량까지 합하면 실제 핵무기 전력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수치가 국제사회의 제재망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비밀리에 핵개발을 지속해 왔음을 방증한다고 본다. 즉, 북한은 이미 ‘핵 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며, 이를 외교와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빠르게 늘어나는 핵전력 추계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은 2020년 이미 100기를 넘어섰고, 2027년이면 200기를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부소장은 최대 242기까지 보유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이 같은 수치는 단순한 양적 확대를 넘어 한반도의 전략적 균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핵무기 보유량이 늘수록 억지력은 강해지고, 남측과 국제사회의 협상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된다. 한국 정부가 구상하는 ‘비핵화 이후 평화체제’ 시나리오가 현실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이유다.

비핵화 대신 억제의 현실주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현재로선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북한은 핵을 단순한 군사적 무기를 넘어 체제 생존 보장의 최후 보루로 보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포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직 정보당국자는 “비핵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은 필요하다면 핵무기를 실제 사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비핵화 목표만 고집하기보다 다층적 억제 전략, 핵 위협을 무력화할 방공·미사일 방어망 구축, 동맹국과의 정보 공유 확대 등 현실적 대응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책적 선택과 국제 협력
정부의 선택지는 단순하지 않다. 외교적 대화와 제재 압박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지만, 대화 유도만으로는 북한의 핵 확대를 제어할 수 없다. 재래식 전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핵 억지력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동맹과의 확장억제 강화, 다자 안보협력체제 활용이 불가피하다. 동시에 일본·호주·유럽 등과의 전략적 공조도 강화해 북한이 핵을 사용하려는 계산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 단독 행동보다 집단적 억제력이 훨씬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멀어지는 비핵화, 남은 과제
E·N·D 이니셔티브는 장기적 비전으로서 의미가 있지만 단기간 내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핵무기 숫자가 늘어날수록 협상은 더 어려워지고, 한반도 긴장은 더 고조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비핵화라는 이상’과 ‘억제라는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공조 속에서 북한의 핵 확산을 억제하고, 한국 사회가 장기적으로 감당해야 할 안보 비용을 최소화하는 로드맵 마련이 시급하다. 결국 비핵화는 먼 목표일지라도, 억제와 방어 능력을 통해 평화를 지켜내는 과정이 당장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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