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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것만 약 4만 톤.. “악마의 무기라 불리는 ‘이것’ 폐기 방법 없어서 방치 중인 한국군”

히나토 기자 조회수  

고창 인삼밭에서 실탄 250발 발견 | 한국일보

폐기 미뤄진 노후탄 2,600만 발, ‘시한폭탄’으로 변하다

우리 군이 이미 사용 불가 판정을 받은 탄약 가운데 2,600만 발, 무게로는 4만 톤이 넘는 노후탄이 여전히 각 부대 탄약고와 야외 적치장에 쌓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상당수가 6·25전쟁 직전 또는 그 이전 시대에 제조된 탄약으로, 심각한 안전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군은 정기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미 다수의 노후탄이 자연 발화나 불발로 이어져 사고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봄 강원도 강릉에서는 6·25 당시 불발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린탄이 자연 발화해 산불을 일으켰다. 현장에서 발견된 탄체는 내부 부식이 심각했음에도 외형은 멀쩡해 보였던 탓에 탄약관리 체계의 위험성을 다시금 드러냈다. 조국혁신당 백선희 의원은 “겉으로는 이상이 없어 보이더라도 내부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며 “노후탄 폐기 계획을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린탄 (r219 판) - 나무위키

백린탄, ‘악마의 무기’가 되어 돌아오다

문제의 핵심에는 백린탄이 있다. 발화점이 약 30도에 불과한 백린은 공기와 접촉하면 스스로 불이 붙는다. 불이 붙은 백린은 1,300도 이상의 고열로 인체에 닿는 즉시 조직을 태우며, 뼈까지 침투할 수 있어 ‘악마의 무기’로 불린다.

백린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개발한 ‘76번 특수 소이탄(No. 76 Special Incendiary Grenade)’이 시초다. 병 형태의 폭탄에 벤젠과 백린을 넣고 던지면, 병이 깨지는 순간 백린이 산화되며 치명적인 화염을 일으킨다. 미군은 1943년부터 독일과 일본의 대도시 폭격에 이 무기를 사용했고, 일본의 요코하마·오사카·도쿄 시내가 백린탄 공격으로 전소됐다. 함부르크 폭격 당시엔 수십만 발의 백린탄이 투하돼 도시 전체가 불바다로 변했고, 불길은 폭격이 끝난 뒤에도 며칠 동안 꺼지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백린탄은 군사적으로는 ‘연막탄’이란 명분을 갖고 있으나, 사실상 폭넓은 화염 피해를 유발하는 살상무기다. 그 잔혹성 때문에 국제법상 민간지역 사용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최근까지 중동과 우크라이나 등 분쟁지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군의 백린탄, 아직도 탄약고에 잠들다

국내에도 백린탄은 주로 연막작전용으로 확보되어 있으며, 적 전방 지역 시야 차단 및 표적 표시용으로 운용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1950~70년대 사이 대량 비축돼 현재는 수명이 다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시기 미국에서 생산돼 들어온 백린탄까지 일부 잔존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탄들이 폐기 기술 부재로 그대로 쌓여 있다는 점이다. 백린은 산화 반응이 극도로 민감하기 때문에, 단순 폭발 해체나 고온 소각이 불가능하다. 공기와 접촉하면 즉시 폭발 위험이 발생하고, 물에 담그는 방식으로도 안정화가 어렵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백린탄의 안전한 분해·폐기 기술을 확보한 국가는 드물며, 우리 군 역시 완전 폐기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방산 전문 기관 관계자는 “백린탄은 일반 폭약보다 위험도가 높아 분해공정에 진공·질소 차단 시스템이 필요하나, 국내 민간업체로는 이를 처리할 설비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4만 톤의 죽음의 재고, 폐기되지 못한 이유

현재 군이 관리 중인 노후탄은 총 118종에 달한다. 고폭탄·포탄·수류탄은 물론, 백린탄과 화학탄 등 특수 화학탄류도 포함된다. 이중 상당수는 이미 부식이 진행되거나 신관이 불안정해진 상태로, 폭발·누출 사고 위험이 매우 높다. 군은 예산과 인력의 한계를 이유로 노후탄 일부를 민간에 위탁 처리하거나 야외 폭파 방식으로 폐기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처리 속도가 적체량 증가를 따라가지 못한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매년 신규 폐기 판정을 받는 노후탄이 약 2,000톤 수준인 반면, 실제 폐기 처리량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 결과 전국 군 탄약고와 창고에는 해마다 새로운 폐기 대상 탄약이 추가로 쌓이고, 현재 전체 노후탄 중 70% 이상이 30년 이상 된 탄약으로 분류되어 있다.

軍, 지하형 탄약고 설치 및 탄약 위탁저장제도 활용 필요" - 뉴스1

환경과 안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할 과제

야외 폭파 폐기는 비용이 적게 들지만, 환경 오염 문제가 심각하다. 백린은 발화 시 독성 연기를 배출하며 주변 토양과 수질에 오염을 남긴다. 폭파 과정에서 발생한 잔류 화합물은 중금속 수준의 독성을 보유해, 장기적으로 토양 생태계를 파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자동화된 탄약 해체 시설 확충과 친환경적 처리 방식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일부 시설은 폐기탄을 분류해 재활용 가능한 금속과 폭약 성분을 분리하는 자동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고 있으나, 백린탄과 같은 화학탄은 여전히 별도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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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린탄의 공포, 현대까지 이어지는 그림자

전쟁의 유산으로 남은 백린탄은 이제 ‘화약보다 위험한 유독 쓰레기’가 되었다. 하지만 관리 부실이 이어진다면 이는 단순한 폐기물 문제가 아닌, 재앙의 불씨로 번질 수 있다. 강릉 산불 사례처럼 기온 상승이 지속되는 여름철에는 자연발화 위험이 더 커진다. 각 탄약고마다 수천 발 단위의 백린탄이 산소와 습기 속에 서서히 부식되고 있는 만큼, 더 이상은 ‘보관’이라는 말로 안전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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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무기, 다시 잠재워야 할 때”

이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안전과 환경이라는 두 축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와 군은 백린탄 폐기를 위한 기술적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폭파 처리에 의존했던 구식 방식을 넘어, 밀폐형 열분해·질소냉각 등 최신 안전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백린탄은 전쟁의 상흔을 상징하는 유물이다. 그러나 그것이 여전히 우리 땅 속에서 부식된 채 잠들어 있다면, 그 상흔은 언제든 다시 불길로 되살아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결단이다. ‘악마의 무기’로 불리던 백린탄을 완전하게 잠재우지 않는다면, 그 불씨는 결국 우리 세대의 손끝에서 다시 타오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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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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