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해군, 두 번째 함정 MRO 한국에 맡기다
지난 4월, 경남 거제에 위치한 한화오션 조선소 특수선 야드에서 이례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미국 해군의 유류 보급함 ‘유콘함’이 정밀 정비를 받는 모습이었다.
이는 미 해군이 한국 조선소에 유지·보수·정비(MRO)를 맡긴 두 번째 사례로, 앞서 월리 시라호가 첫 정비 대상이었다. 유콘함은 1994년 취역해 30년 이상 운용된 노후 선박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조선소는 빠른 시간 안에 정비 일정을 소화하며 미국 측의 신뢰를 끌어냈다.

“한국 기술력 인상적”…미국 검수관의 평가
이번 정비에는 미국선급협회(ABS)의 볼로디미르 보로베츠 수석 검사관이 현장에 상주하며 검수를 맡았다. 그는 “양국 전문가들이 긴밀하게 협업해 문제 해결 속도가 매우 빨랐다”며 “한국 조선소의 기술력과 대응 능력은 미국이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미국 본토에서 수개월 이상 소요되는 수리가 한국에서는 단 며칠 만에 완료되는 사례가 나오자, 미 해군 내부에서도 “한국 MRO 체계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조선업 위기와 한국의 기회
미국 조선업은 현재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노후화된 생산시설, 숙련공 부족, 공급망 와해라는 삼중고로 인해 함정 정비와 신조가 모두 지연되는 상황이다. 반면 한국은 상선과 특수선을 아우르는 세계 1위 조선 강국으로, 설계 능력·납기 준수·품질 관리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 클라크슨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글로벌 선박 수주 점유율은 55%로, 중국(35%)을 크게 앞섰다. 특히 유럽과 중동 선진국의 발주 물량은 대부분 한국이 독식하고 있어 조선 기술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속도와 생태계가 만든 경쟁력
한국 조선업의 강점은 단순한 기술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조선소는 다품종·소량 생산 체계에 최적화돼 있어, 복잡한 군함 정비도 신속하게 소화할 수 있다. 더불어 1만 명에 달하는 연구개발 인력과 수백 개의 협력업체 네트워크가 촘촘히 연결돼 있어, 문제 발생 시 곧바로 대체 부품과 기술 지원이 가능하다.
이 같은 산업 생태계가 속도와 품질을 동시에 담보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민수선과 군함은 기본적으로 건조 원리가 같다”며 “민간 분야에서 쌓은 효율성이 군함 정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조선 협력, 정비에서 건조로 확장될까
현재 한국에서 정비를 받는 미 해군 함정은 전투함이 아닌 지원함에 한정돼 있다. 이는 보안 규정과 군사적 기밀 유지 차원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관계자가 “몇 개월 걸릴 정비가 한국에서는 단 3일”이라며 협력 확대를 강조한 만큼, 단순 MRO를 넘어 신규 함정 건조 협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특히 미국이 동아시아 전력 배치에서 속도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상황에서, 한국 조선소의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K-조선’의 전략적 가치
한국 조선업은 이미 상선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지켜왔지만, 이제는 군함과 MRO 분야에서도 새로운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한화오션이 수행하는 미 해군 정비는 단순한 산업적 성과를 넘어, 한미 동맹 차원의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한국이 제공하는 ‘빠른 수리·높은 품질·낮은 비용’의 삼박자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해군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업이 민간과 군수 영역을 넘나들며 글로벌 방산·해양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며 “향후 10년간 한국 조선소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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