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하구를 스며든 북한 공작조 3명
당시 새벽 2시 50분경, 진눈깨비가 내리던 한강 하구는 겉보기에 조용해 보였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북한 정찰국 공작원 3명이 은밀히 도하를 시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강 하류의 유속과 물결을 이용해 최대한 소음을 줄이며 초소 인근까지 접근했고, 기존 작전 사례로 볼 때 초소를 급습해 무기와 정보를 노리는 임무를 띠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된다.

수면의 ‘이상한 꺾임’을 알아본 특등사수 일병
황중해 일병은 근무 교대 10분 전, 70m가량 떨어진 강 수면에서 미세하게 ‘꺾여 흐르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양안 시력 2.0에 중대 특등사수로 알려졌던 그는 단순 부유물이나 짐승이 아니라 수면 아래 ‘사람’이 있다고 직감했고, 즉시 후임 김범규 이병에게 인근 소초에 상황을 알리라고 지시한 뒤 자신은 초소를 지키며 사격 위치를 선점했다.

결정적 순간, 3명을 조준 사격으로 끝냈다
공작원들은 수면 위로 몸을 드러내며 마지막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고, 어둠 속에서 초소를 향한 기습 사격을 준비했다. 황 일병은 숨을 멈추고 M16 소총을 단발 사격으로 전환한 뒤 선두 공작원의 흉곽, 이어 두 번째 공작원의 목 부위를 정확히 관통시키며 두 명을 즉시 사살했다. 마지막 한 명은 어둠 속에 몸을 숨겼지만, 곧 도착한 지원 소대 20여 명과의 합동 사격으로 제압되며 공작조 3명 전원이 현장에서 사살됐다.

완전작전으로 기록된 ‘3.23 한강 침투 격퇴’
이 사건은 아군 피해 없이 적 공작조를 전원 제거한 ‘3.23 완전작전’으로 공식 기록되었고, 우리 군은 현장에서 소총·잠수복·통신장비 등 장비 47종 465점을 노획했다. 군사 전문가는 만약 이 침투에 성공했다면 수도권 방어선 내부에서 테러·암살·시설 파괴 작전이 가능했을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평가하며, 일개 일병의 경계 능력이 수도권 전체를 지킨 셈이라고 분석한다.

2계급 특진과 ‘헬기 타고 가는 1년 휴가’ 전설
황중해 일병과 김범규 이병은 공로를 인정받아 각각 2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 참모총장 표창, 국가유공자 예우를 받았다. 특히 황 일병은 사단장·연대장 포상휴가를 합쳐 무려 1년 휴가를 부여받았고, 연대장 휴가 때는 헬기를 타고 고향에 귀향하는 특별 행사까지 치러 ‘헬기 타고 집에 간 전설의 일병’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파트 한 채 값 포상금, 그리고 ‘황중해 소초’
당시 황 일병에게 지급된 포상금은 1,700만 원으로, 강남 은마아파트 30평형 가격(약 1,900만 원)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9사단은 그의 공을 기려 2002년 구산리 소초를 ‘황중해 소초’로 공식 개명했고, 매년 3월 23일이면 이곳에서 기념 행사를 열어 경계병들의 교범이자 ‘북한의 최대 망신’으로 남은 이 완전작전을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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